p.73
엄마와 할머니는 다음날 나를 조용히 불러다 앉혀놓고 병아리가 원래 약했다며
오래 살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아마도 병아리가 죽게되면 내가 충격을 받을까 봐서였을 것이다.
할머니는 진이 다 빠진 병아리를 마치 인간 아기를 돌보듯 밤에도 추운 부엌으로 나가 물을 데워먹였다.
부처는 '와서 믿으라' 라고 말하지않고 '와서 보라' 라고 했다던데, 불교신자였던 할머니 덕분에
나는 자비가 색과 형태를 지닌것임을 그때 봤다. 추운 겨울밤 두 시간마다 병아리에게 물을 먹이던
할머니의 둥근 분홍색 솜바지처럼. 그날 이후 '목숨을 건 남녀의 사랑', ' 자식에 대한 어미의 사랑' 에
매료된 적도 있었지만, 그 어떤 사랑보다도 '자비'가 한 수 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마음 한 켠에 자리잡았다.
p.110
윤석남은 "예술가는 지상으로부터 20센티미터 정도 떠 있을 수 있는 사람. 너무 높이 떠 있으면 자세히 볼 수 없고
현실속에 파묻히면 좁게 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라고 말한다.
p.117
내가 대학을 졸업했을 무렵인가 엄마는 명지대학교에서 일하던 자리가 20년넘게 꿈에 나오더니
최근에야 보이지 않는다며 웃었다. 마치 폭풍우 속에서도 꺾이지 않은 고목의 생명력에 감탄하듯 말했다.
한동안 집안 구석구석이 등나무 공예품으로 가득찼던것도 어쩌면 나중에 가르치는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는것도 알게되었다.
p.151
그렇다면 이상향이란 결국 시간을 잊어버릴 정도로 즐거운 곳이라는 뜻일까.
16세기 조선의 학자 조식은 "아희야 무릉이 어디오, 나는 옌가 하노라" 며 호기롭게 이곳을 낙원으로 명명하였는데,
그렇다면 나도 몇 번 정도는 이곳이 무릉인적이 있었다.
야나기미와 [My Grandmothers . 2001]
출처 : http://www.yanagimiwa.net/grandmothers/project/0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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